바람만이 알고 있지
2026년 6월 27일 토요일
2026년 6월 26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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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고리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5단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을 묵상하며 성모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 올리시어 천상 모후의 관을 씌워주셨음을 묵상하는 내용입니다.
1단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에 불러올리심을 묵상합시다.
5단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오늘의 기도
회복과 정화로 하느님의 소중함을 깨닫고 계속해서 함께하는 삶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도 감사드립니다💗
1. 자녀를 위한 기도
2. 고리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15단
3. 사제를 위한 기도
4. 화살기도
1) 하느님, 함께해 주세요.
5. 감사기도
1) 하느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25일 목요일
데레시다 수녀님께서 보내 주신
06.25.목.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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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새들은
철조망을 넘고,
강물은 막힌 길을 돌아서도
끝내 하나 되는 바다를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분열된
세상을 바라보시며
우리에게 먼저
화해의 사람이 되라고
초대하십니다.
마음의 벽이 무너지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도
조금씩 허물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 기도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분열은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며,
화해와 일치는 하느님 나라의
본질입니다.
화해는 약함이 아니라 용기이며,
일치는 획일성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참된 일치는 서로를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깨어있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갇히면
타인을 보지 못합니다.
자신의 옳음을 붙듵수록
상대는 점점 멀어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만남입니다.
같은 집에 살아도,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고립감을 느낍니다.
"내 이름으로 모인 곳"은
사랑과 신뢰, 존중과 배려라는
인간다운 가치 안에서
서로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 역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갈등과 분열은 상대를 낯선
존재로 여길 때 커지고,
화해와 일치는 서로가 같은
인간적 아픔과 희망을 지닌
존재임을 깨달을 때 시작됩니다.
평화는 거창한 선언보다
진실한 기도와 진실한
손길에서 시작됩니다.
화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이미 평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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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닮은 사랑의 자녀 되게 해 주세요🙏
수녀님 글 감사합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로 이웃을 바라봅니다🙏
기도 감사합니다💗1. 화살기도
1) 하느님, 함께해 주세요.
2) 이승하군을 위해
- 강남구에서 배회중인 이승하군(남,9세)를 찾습니다.145cm,40kg,파란무늬흰반팔,검정7부바지,검정크록스,파란에코백 vo.la/XYaUG /☎112[서울경찰청]
- 서초구에서 배회중인 이승하군(남,9세)를 찾습니다.145cm,40kg,파란무늬흰반팔,검정7부바지,검정크록스,파란에코백 vo.la/XYaUG /☎112[서울경찰청]
3) 로사쌤과 가정을 위해(승찬 야고보를 위해)
4) 유수호 형제님을 위해
강남구 주민인 유수호(남,78세)님을 찾습니다. 163cm,40kg,남색야구모자,남색긴팔점퍼,짙은회색 긴바지 vo.la/xczTP /☎182 [서울경찰청]
2. 고리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1단
3. 복음과 독서 말씀 묵상
4. 사제를 위한 기도
5. 미사
6. 성서사십주간
7. 감사기도
1) 하느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오전 10시 미사 도미니코수도회 노경덕 토마스모어 손님 신부님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2)
하느님께서도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무한히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과 자비로 저도 이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에페 5,2)
예수님을 생각하며 저와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계산을 무너뜨리십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18,22). 이 말씀은 형제에게 받은 상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가 되풀이되는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고단하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의 말씀입니다. 용서는 상처의 크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지치면서도, 다시! 분노가 식지 않았는데도, 다시! 그 ‘다시’가 용서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공동체가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상처 속에서도 서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그 배움의 자리 한가운데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런데 배우기 참 힘들지요. 배우기 싫기도 합니다. 그런 상처받은 마음 또한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분명히!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데레사 선생님과 한지박에서 점심 먹고 후식으로🍦🍦
정량보다 더 많이 주셨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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