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21일 목요일
2022-24. 마르코 복음 묵상
마르코 복음 묵상
L'itinerario spirituale dei Dodici nel Vangelo di Marco
열두 제자의 영적 여정
C. M. 마르트니(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Carlo Maria Martini) 지음
성염 옮김
바오로딸 www.pauline.or.kr
1988년 11월 30일 교회인가
읽은날 : 2022년 7월 21일(목)
- 13p. 도정 : 어떤 곳 이나 상태 에 이르기 까지의 과정 . 내가 예수회 사제인 만큼, 마르코복음에 제시되어 있는 수덕의 여정이 성 이냐시오가 쓴 '영신수련'에 나오는 도정과 같은 것임을 간간히 지적해 갈 생각이다.
- 49p. 지엽적 : 사물 이나 사건 따위 에서 본질적 이 아니라 부차적 인 부분 에 속하거나 관계된 것 . 다윗은 그들과 달랐고, 무엇이 중하고 무엇이 지엽적인지 알았으며, 그 스스로 외형적인 적법성을 극복하였다고 설명하셨다.
책을 접하며 제자들의 모습에 내가 있음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이건 나 뿐만이 아닐 것 같다.
'예수님의 의도는 이것이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유다를 빼고는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갔기에, 나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아이가 첫영성체를 받을 때와 초급교사학교 들어가기 전에 '마르코' 복음 필사가 미션이었다.
마르코 복음서가 제일 짧다는 게 선정된 이유라고 들었다.
이 책에서 마르코 복음을 예비신자 복음서라고 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ps. 각주가 하단에 있어 보기가 편했다.
- 48p. [제자는 무지와 몰이해의 상황에 대해 항상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구절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본당 신부님께 책망을 받고 있는 내가 괜스레 떠올랐다.
그래도 예수님은 안 바뀌시는데, 신부님은 2년마다 바뀌니 그에 따라 금방 적응이 안 되는게 사실이다. 신부님이 오신지 1년이 돼 가고, 교사 퇴임을 앞 둔 이제서야 이 신부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게 됐다.
- 54p. [외적인 걱정이 쌓이는 일은 우리가 부딪히는 가장 심각한 위험인데 그것은 어느 순간이든 우리의 정신을 질식시키고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도움이 안 되는 외적인 걱정을 기도하며 빨리 털어버리려고 해야 겠다.
- 58p. [교만은 하느님 나라를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고 하느님 나라의 깊은 진리를 통찰하는 데에 사람을 아둔하게 만든다.]
교만의 위험을 깨닫자!
- 59p. [복음을 받아들이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은 그 같은 어려움과 곤경에 처해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복음을 경청할 단계에 있지 않은 셈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예수님이 들어오고 싶어도 틈이 없으면 들어올 수 없다. 예수님의 자리를 내어드릴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내 마음에 들어올 수 있다.
- 83p. [이상의 것이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가르치고 준비시키신 경위이며, 교회 안에서 주님과 함께 있도록 부름을 받는 사람들 모두를 준비시키시는 방식이다.]
그동안의 신앙 체험으로 인해 이 구절이 이해가 갔다.
- 114p. [구마자에게는 자만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충고요, 그 권능은 하느님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인정하라는 권유가 된다.]
하느님과 기도로써 대화하며 자만을 없애고,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신앙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 167p. [예수님의 지상 생애로부터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모든 상황의 풍요로운 가치를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마태 13,16) 이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 예수님 말씀을 경청하려면 열둘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보는가?
: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가?"란 자세를 갖추어 귀를 기울여 겸손하게 들으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하시려는 뜻을 곧바로 감지할 수 있다.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아 마침내 스스로를 바로잡도록 노력하는 참회의 자세도 필요하다.
- 그들에게서 어떤 사고방식을 발견하는가?
: 비판을 가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라면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지만 일에 뛰어들거나 책임을 나눌 생각은 전혀 없다. 본인은 결코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 안일하고 비판적인 입장만 견지하려 한다. 하느님의 나라를 두고 유식하게, 참으로 현명하게 토론하고 논의를 하지만 손을 더럽힐까 봐 겁내고, 말려들까 봐 두려워한다.
예수님과 같은 몰락을 두려워한다. 예수님처럼 정신 나갔다는 말을 들을 까 봐 두려워 한다. 부분적으로나마 거기 참여해 보고 싶지만, 너무 많이 참여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까 봐 두려워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신비에 아주 깊숙히 들어가기는 싫어한다.
- 신앙의 전제조건으로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그대는 어느 길을 택하고 싶은가? 이 길은 어떤 근거를 제시하는가?
: 신앙의 전제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고 싶다. 그 길은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마태 13,16) 이 성경 구절처럼 예수님의 지상 생애로부터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모든 상황의 풍요로운 가치를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 그분과 함께 있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느님 나라의 점진적 계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 하느님은 우리가 살던 바로 그 처지로 우리를 만나러 오셔서 우리를 부르시고, 신앙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로 초대하신다. 그 부르심은 각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그곳, 각자가 놓여있는 그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무지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입으로 고백하면 예수님께서는 반가운 소식 깜짝 놀랄 소식을 가져다주신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된다. 그분과 친밀하게 삶의 친교를 나누면서 그분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그러면서 그분을 증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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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을 예비신자 복음서라고 하는 이유를 파악을 못 했는데, 시몬 신부님 서평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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