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2일 목요일
2023-113. 어둔밤
어둔밤
Noche Oscura
십자가의 요한(S. Juan de la Cruz) 지음
방효익 옮김.해설.역주
기쁜소식
교회인가 : 2005년 7월 11일
대출 : 2023년 10월 6일(금) 사당솔밭도서관
읽음 : 2023년 10월 12일(목)
- 7p. 굄 : 유난히 귀여워하 고 사랑함 . 굄하는 이와 굄받는 이를
- 81p. 주부 : 主 部. 주요한 부분 . 이를 우리는 주부적 관상이라고 말했다.
- 229p. 가뭇하다 : (사물 이나 그 빛깔 이 ) 조금 감은 듯하다 .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나 비록 가뭇하지만 어여쁘답니다"(아가 1,4-5)
- 43p. 십자가의 요한의 작품들은 서로 보완적인 역활을 많이 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의 작품을 읽어서는 십자가의 요한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예를 든다면, "어둔밤"에서 말하는 관상기도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들을 묵상기도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가르멜의 산길"에서 찾을 수 있다("가르멜의 산길", I, 1,4; 3,1). 또한 "어둔밤"에서 설명하는 영(정신)의 정화에 대한 이유와 정화가 이루어진 다음에 얻어지는 신비체험의 내용들을 "영가"와 "사랑의 산 불꽃"에서는 보다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가르멜의 산길"에서 자주 등장하는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문제는 "사랑의 산 불꽃"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 위에 언급된 책을 다 읽어야 십자가의 요한의 사상을 그래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몬 신부님께서 <가르멜의 산길>에 이어 이 책을 선정하셨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위에 언급된 책들을 다 읽어봐야겠다.
- 79p. 인간이 하느님께 부여하는 모든 명칭조차도 적절한 것이 못 되며 : 인간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마음 또한 헤아릴 수가 없다.
- 83p. 이 모든 것들은 침묵을 경험하는 기도요, 언어적인, 구술적이 그리고 상상 속의 이미지들을 비워 내는 기도요, 해방시키는 기도요, 고통을 감내하는 기도이다. : 침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그리고,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고통을 기쁘게 받아드릴 때가 올 것인가? 고통을 통해 신앙이 성장함을 알지만, 고통을 받는 것이 아직까지는 두렵게 느껴진다. 현재의 고통도 있기에,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감내할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신다는 것을 느낀다. 하느님 안에서 잘 이겨나가게 해 주심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전적으로 하느님께 매달리며 인내로써 고통을 기쁘게 받아드릴 날이 오기를 바란다.
- 하느님은 사랑으로만 알 수 있으며,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만 그분과의 일치에 이를 수 있고, 이 사랑이 표현되고 체험되는 통로가 바로 기도이기 때문이다. :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그리고 기도로써 그분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 24p. "어둔밤"에서 칠죄종(七罪宗)에 대한 모든 문제를 다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다만 교만(2장), 음란(4장), 분노(5장), 영적 탐욕(3. 6장), 그리고 질투와 나태(7장)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다. : 현재는 '나태'에 빠질 때가 많기에, 이 점을 관심있게 봐야겠다.
- 26p. 기회가 닿기만 하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생각하지 않는 것(마태 7,3)처럼 언행으로 그들을 단죄하고 헐뜯는다. : 주일학교 교사회에 신천지가 침투하여 한창 예민해져 있을 때 이와 같이 행동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 32p. 하느님께서는 이런 모든 결점들로부터 정화시키기 원하시는 영혼들을 어두운 밤에 넣어주시는데 수련을 시작하는 영혼들을 앞으로 끌고 가시기 위해서이다. : 하느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끌고 나가 주셔서 그 사랑과 자비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 39p. 악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도가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충동들과 싸우느라 그런 것인데 어떤 이들은 아예 기도를 완전히 포기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악마가 원하는 것이다. :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매일 꾸준히 해 나가야겠다.
- 40p. 연약하고 예민한(세심한) 성격을 가진 영혼들에게서는... : 연약하고 예민한(세심한) 성격이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에 해당되지는 않기에 이 점에 대해서는 다행이고,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 66p. 앞에서 말했듯이,
- 참조: "가르멜의 산길", II, 13-14 : 시몬 신부님께서 "가르멜의 산길"을 먼저 읽게 한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됐다.
- 83p. 이것은 모세에게도 있었던 일이다. : 모세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위로가 된다. 그리고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준다.
- 모세가 순명을 했던 것은 매우 바르고 슬기로운 일이었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모세는 단지 접근하기를 그친 것만이 아니라 함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탈출 3,6). 욕구들과 기쁨의 신발을 벗었다는 것은 모세가 하느님 앞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초라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 하느님에 대한 순명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성모님도 하느님께 순명했다. 그 순명으로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택하셨다. 모세도 마찬가지다.
- 86p. "주님 제 자신을 알게 하소서, 당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아우구스티노의 이 말("Deus semper idem; noverim me, noverim te." PL 32,885) : 인생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알게 된다.
- 107p. '정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과정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야 됨을 알게 됐다.
- 108p. 나아간 이들이 머물러야 하는 밤을 거치지 않은 모든 이들이 이런 습관적 결함들을 가지고 있다. : 밤이 나쁜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었다.
- 124p. '가르멜의 산길'뿐 아니라, '사랑의 산 불꽃' 책도 읽을 기회를 주신 시몬 신부님께 감사를 드린다♥
- 134p.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 우리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주도권, 즉 영성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수동적 입장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다. : 주도권을 하느님께 내어 드려야 함을 늘 인식하고 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앞에 가시고, 저는 그 뒤를 따라야 함을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보다도 저를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저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시는 분임을 압니다.
- 158p. 이 결함들이 바로 불이 태워야 하는 대상인데, 불이 붙더라도 불은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 탔다면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결함들이 다 태워졌다면 영혼의 고통은 끝날 것이고 영혼은 기뻐할 것이다. : 악이 힘을 쓸 수 없는 단계, 이렇게 되면 바로 하느님께 달려가고, 기쁘게 하느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본을 보여주셨다.
- 183p. 광야로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이유는 "사랑을 속삭여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귀에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이스라엘)의 마음에다 말을 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마음에다가 사랑을 속삭이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를 데리고 가실 광야는 정화의 장소이며 고독한 장소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력을 발휘하는 곳이며, 우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서 광야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기보다는(아모 525) 오히려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곳이며, 창조의 위력이 드러나는 곳이다. :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기도를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메마른 곳이라기보다 유혹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새기는 곳이다.
- 194p. '어두움 속으로 안전하게' : 늘 하느님께서 함께함을 느끼고 깨달으며 어둠 속에서도 불안해 하지 않고 믿고 나아가야겠다.
- 217p. "신랑은 신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밖에서, 황량한 곳(인적이 드문 곳)에서 신부를 기다린다" : 인내하며 기다린다. 인내하는 자만이 신부를 맞아드릴 수 있다.
- 222p. 이것이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영혼이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이 하느님을 닮게 된다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닮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 223p. 사다리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하느님을 기쁘게 만날 수 있게 된다.
- 227p. 영혼도 세상을 볼 수 가 없다. : 오타 발견^^
- 250p. 행복한 밤에 : 하느님과 함께 행복하고 감사한 밤을 기쁘게 맞았으면 좋겠다.
주석이 상당해서 놀랬다. 그래도 주석이 바로 하단에 있어 읽기가 편했다. 안 그랬으면 이 많은 주석을 읽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시몬 신부님께서 '가르멜의 산길'과 '사랑의 산 불꽃' 책을 읽고 이 책을 읽게 한 이유를 알게 됐다.
두 책을 읽고, 이 책까지 읽을 기회를 주신 시몬 신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관련 서적을 더 읽고 싶다.
이 책을 통해 침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그리고,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다. '고통을 기쁘게 받아드릴 때가 나에게 과연 올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통해 신앙이 성장함을 알지만, 고통을 받는 것이 아직까지 두렵게 느껴진다. 현재의 고통도 있기에,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감내할 수 있는 고통만을 주신다는 것을 느낀다. 하느님 안에서 잘 이겨나가게 해 주심에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전적으로 하느님께 매달리며 인내로써 고통을 기쁘게 받아드릴 날이 오길 바란다.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에 기도로써 그분과 사랑을 나누며 고통을 함께 인내하며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기회가 닿기만 하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생각하지 않는 것(마태 7,3)처럼 언행으로 그들을 단죄하고 헐뜯는다.'라는 문구에서 반성의 시간도 가졌다.
이런 나이지만, 하느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끌고 나가 주셔서 그 사랑과 자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모세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위로가 됐다. 그리고 나 또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됐다.
하느님에 대한 '순명'의 중요성도 다시금 알게 됐다. 성모님도 하느님께 순명했다. 그 순명으로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택하셨다. 모세도 마찬가지다.
그러려면 주도권을 하느님께 내어 드려야 함을 늘 인식하고 살아야겠다. 하느님께서 앞에 가시고, 나는 그 뒤를 따라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나보다도 나를 잘 아는 분이시기에,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정화'의 필요성도 느끼게 됐다. 그 과정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야 됨을 알게 됐다.
밤이 나쁜 것이 아니었다. '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이었다.
광야 또한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기도를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메마른 곳이라기보다 유혹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새기는 곳이다.
늘 하느님께서 함께함을 느끼고 깨달으며 어둠 속에서도 불안해 하지 않고 믿고 나아가야겠다.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인내하는 자만이 신부를 맞아드릴 수 있다.
악이 힘을 쓸 수 없는 단계, 사다리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바로 하느님께 달려가고, 기쁘게 하느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본을 보여주셨다.
'"Deus semper idem; noverim me, noverim te." PL 32,885'.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처럼, 인생은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닮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느님과 함께 행복하고 감사한 밤을 기쁘게 맞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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