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3일 월요일

서울주보 제2540호 주님 세례 축일

 


이젠하임 제단화의 십자가 형(부분) 
마티아 그뤼네발트 (Matthias Grünewald, 1470-1528) 
 1515, 패널에 유채 
 운터린덴 미술관, 프랑스 콜마르


세례자 요한은 꼿꼿이 서서 단호하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고 선포합니다. 마티아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의 주제는 십자가입니다. 당시는 전 유럽에 페스트가 만연하던 고통의 시기였고, 화가는 십자가상 예수님의 상처와 고통을 아주 처절하게 묘사합니다. 일반적으로 십자가 옆에는 잘 그리지 않는 세례자 요한을 세워 분명히 예수님을 가리킴으로써 혼란과 분열, 고통과 절망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향할 곳은 바로 어린 양이신 ‘그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주열 안드레아 신부 | 삼양동(선교)성당 주임

- 2p. 세례 받은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과 딸이 되도록 합시다.


- 4p.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굳건히 믿으며 그분께 희망을 두는 이들에게는 이런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이런 창조를 계속하실 것입니다.
- 5p. 1987년 6월 항쟁 때 김수환 추기경님은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학생들을 진압하려는 경찰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경찰들 이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제일 먼저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들을 밟고, 그다음에 수녀들을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그 이유는, 교회는 정치 영역에는 관할권이 없지만 적어도 윤리 분야에 있어서는 특별한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절대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무’를 가지고 있으며, 이 직무는 정치 생활에 관한 윤리법들에도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사목헌장 76항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교회가, “인간의 기본권과 영혼들의 구원이 요구할 때에는 정치 질서에 관한 일에 대하여도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정당하다.” 이에 교회는 전쟁과 환경에 대해 그리고 여러 가지 법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며 정치에 대해서도 윤리적 주제라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는 정치에 대한 관여가 아닌, 세상 안에서 실현되어야 할 하느님의 질서에서 오는 책무입니다. 단, 교구장님께서 올해 성탄절 메시지를 통해 말씀하셨 듯, 이것이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화해와 일치를 통해 하느님의 질서를 이 루고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혜와 겸손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바로 여기에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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