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1일 금요일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

 8월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

 

클라라 성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분 계십니다. 가난과 겸손의 성인이자 제2의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십니다.

 

그가 지녔던 인간적 성품, 그가 추구했던 가치관, 그가 소유했던 신앙과 삶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지 당대 수많은 청년들이 그와 같은 길을 걷고자 세상을 등졌습니다. 클라라 역시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란 인물과 그가 주도한 가난을 통한 영적 쇄신 운동에 흠뻑 매료된 클라라 역시 뭇 남성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귀족 가정 출신 자녀로서의 풍요와 특권도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상속재산도 자발적으로 포기했습니다. 그 단호한 결정들이 모두 영적 스승이자 사부이신 프란치스코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출가 이후 클라라는 프란치스코가 제시한 영적 여정을 단 한 치 오차도 없이 충실히 따랐습니다. 클라라의 영성은 프란치스코의 그것과 동일합니다. 가난과 겸손과 사랑입니다.

 

그녀가 자주 강조한 것은 그냥 가난이 아니라 겸손과 함께 하는 가난, 그리고 동시에 가난과 함께 하는 겸손이었습니다.

 

그녀의 생애 안에서 가난과 겸손은 다정하게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 안에서 이루어진 철저한 가난과 겸손의 실천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그리스도의 사랑에로 나아가게 만들었습니다. 클라라의 삶이 스승 프란치스코와 다른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녀는 봉쇄구역 내에서 프란치스코 영성에 따라 관상 수도생활을 해나간 것입니다.

 

그녀가 평생토록 관상 수녀회 안에서 끊임없이 바라본 것은 프란치스코가 바라본 것과 동일입니다. 곧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동시에 성체 안에 머물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런 클라라 성녀에게서 사람들은 ‘복사판 프란치스코’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또는 ‘제2의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의 영혼에서 나온 여인’, ‘프란치스코의 거울’, ‘프란치스코의 여성적 얼굴’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녀 자신도 스스로를 일컬어 ‘복되신 스승 프란치스코의 작은 나무’라고 즐겨 불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제 개인적으로 제2의 프란치스코 시대라고 부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베르골리오 추기경을 ‘종들의 종’인 교황으로 선택하셨고, 그분은 당신의 교황 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교황님께서는 온몸과 마음을 다해 가난과 겸손의 삶을 전 세계 사람들 앞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난과 겸손으로 무장한 제2의 프란치스코로서 물질만능주의와 경제지상주의에 물들어있는 이 세상에 맞서 외로운 영성쇄신운동을 펼치고 계신 것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클라라가 그러했듯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가난과 겸손만이 현재 우리 교회가 살아날 유일한 탈출구로 여긴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정신이나 이상, 영성으로만 추종한 것이 아니라, 100% 있는 그대로, 실제로, 구체적으로, 온몸으로 실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회심이후 한 평생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 기쁘게 했습니다. 완벽한 가난의 실천을 가로막는 무수한 장벽들과의 피나는 투쟁이 그의 일생이었습니다.

 

클라라의 삶 역시 사부 프란치스코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복사판’이었습니다. 클라라의 삶은 마치 프란치스코의 삶의 거울과도 같은 삶이었습니다. 가난과 겸손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이는 오늘 우리 교회의 모습, 나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게 바라봅니다.

 

아무것도 아쉬울 것 없는 풍요롭고 안락한 삶, 가난의 영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활,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조금도 연대하지 않는 모습을 부끄러워합니다. “자매들은 집이나 거처, 그 어떤 것도 자기 소유로 하지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순례자와 나그네처럼’ 가난과 겸손 안에서 주님을 섬기면서 신뢰심을 가지고 구걸하러 보낼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스스로 가난해지셨으니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클라라의 수도규칙)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