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신부님 말씀 묵상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마르 7,24-30)
오늘 복음에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부인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교도로서, 이방인들의 지역에 살았습니다(마르 7,25-26 참조). 이 여인은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아주 멀리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때 같으면 온화하게 병을 치유해주실 것 같은 예수님이 심한 모욕, 즉 ‘강아지’에 비유하십니다(마르 7,27-28 참조). 흔히 사람을 개로 취급하면 엄청난 화를 나게 하는데, 예수님은 직설적으로 표현하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은 모욕감(侮辱感)에도 항의하지 않고 오히려 참아냄으로써,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이 나았습니다(마르 7,29-30 참조). 즉 자신에게는 아무런 득이 되지는 않았으나, 딸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싫어하고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욕’을 구원의 도구로 쓰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이것을 참아 받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는 참으로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당장 나에게 어떤 복을 가져다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어떤 이는 참된 회개와 치유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섭리’는 우리들의 생각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모욕은 없어져야 할 ‘악’이라고 생각되는데도, 하느님은 이것마저 당신의 구원 사업에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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