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3일 수요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렸을 때에 친구들과 야구를 많이 했습니다. 아니 야구가 아니라 ‘찜뽕’이라는 것을 했었지요. 왜 ‘찜뽕’이라고 말했을까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옵니다.

‘작은 고무공을 주먹으로 치고 나가는 야구와 비슷한 놀이의 전라도 방언.’

당시에는 작은 고무공 하나도 귀했었지요. 그래서 라면봉지들을 한 봉지에 담은 뒤에 동그랗게 말아서 실로 단단하게 묶었습니다. 이것이 공이었고, 이러한 공으로 축구도 하고 찜뽕도 했습니다. 진짜 공이 없으니 다른 장비가 있을 리가 만무했지요. 그러다 어쩌다 누군가가 공을 가져오면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항상 운동장에는 공을 가지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았고, 운동장에 자리가 없어서 동네의 빈 공터 역시 뛰어노는 아이들로 북적였습니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참으로 행복한 기억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았어도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어떠한 것을 한다고 하면 다 장비를 갖추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야구를 한다고 하면, 글러브는 기본이고 포수 보호 장비까지 다 갖추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없어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방과 후 초등학교 운동장을 보면 늘 텅 비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네의 놀이터를 비롯한 공간에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이곳 역시 아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숫자가 줄기도 했지만 노는 아이들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을 갖게 합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어른이 되었을 때 슬그머니 웃을 수 있는 행복의 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시면서 행복과 불행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가난한 사람, 지금 우는 사람,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하는 사람, 박해를 당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은 반대로 불행하다고 하시지요.

행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주님의 말씀은 왜 정반대일까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하다고 하시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은 반대로 행복하다고 하시는 주님을 이해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부족함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것을 기억해보니,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이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 중요한 가치에 모든 것을 걸면서 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사랑의 삶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세상의 기준을 넘어서 주님의 기준을 따르는 사람,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할 일, 사랑할 대상, 소망할 일(알렉산더 차머스).

 

 

마음을 바꾸는 것

  

비행기(보잉 747)의 무게는 자그마치 350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난다는 것이 정말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비행기가 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속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긴 활주로를 시속 100Km, 200Km, 300Km로 계속해서 속도를 올려서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비행기의 무게가 속도에게 잡혀 먹혀서 하늘을 날 수 있는 가벼운 상태가 된다고 하더군요.

잘 이해가 되지 않지요? 돌멩이를 손에 들고서 힘껏 던지면 속도가 있는 동안에는 돌멩이의 무게가 작용하지 않아서 공중에 떠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속도가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무게가 다시 증가해서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동차도 그렇습니다. 자동차가 시속 100Km 정도로 달릴 때의 무게는 글쎄 500g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추돌 사고를 내면 마치 종이를 구기듯이 심하게 구겨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 속도를 내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고통과 시련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점점 좌절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떨어지지 않도록 속도를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요?

마음을 바꾸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좌절이 아닌 희망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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