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8일 월요일
좋은 사람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루카 7,1-10
좋은 사람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가끔씩 뜻밖의 선물처럼 참으로 매력적이고 호감가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로또에 당첨되거나 보너스를 탈때 보다 더 기분이 좋습니다.
그저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인간미에 자상하고 너그러운 성품, 균형잡힌 감각에다 이웃을 배려하는 자상한 마음, 거기다 예의바르고 겸손한 말투까지.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훈훈해집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금은보화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 무엇이든 한없이 베풀고 싶습니다.
해질녘 긴 강가를 따라 아무리 걸어도 피곤을 느끼게 하지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극찬하시는 백인대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향한 예수님의 칭찬은 복음서 그 어디를 봐도 찾아보기가 힘든 대단한 칭찬이었습니다.
당신께서 후계자로 지목하신 베드로 사도에게도, 애제자였던 요한 사도에게도 하지 않으셨던 극찬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복음 7장 9절)
그렇다면 극찬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에 앞서 백인대장이 지니고 있었던 한없이 따뜻한 인간미 때문이었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누군가의 치유를 간절히 청하고 있었는데, 그 대상이 누구였습니까?
백인대장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했던 아들이나 딸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노예의 치유를 청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 처럼 예수님 시대 당시 노예는 가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우리 시골 장날 우시장에서 소가 매매되듯이, 당시 노예들은 목줄이 묶인 채 길거리에 진열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예를 사러 온 사람들은 마치 소를 사는 것 처럼 노예의 입을 ‘쫙’ 벌려 치아가 괜찮은지 확인해봤습니다.
때로 옷을 홀랑 벗겨 피부병은 없는지 육안으로 자세히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런 어처구니 없던 시대, 백인대장은 자신의 노예를 가족처럼 여기며, 인격적으로 대해주었습니다.
노예였지만 한 지붕 아래서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다보니 정이 많이 쌓였겠지요.
그런 노예가 죽을 병에 걸리자 체면불구하고 예수님께 치유를 청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인대장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다인들에게도 큰 호의를 갖고 살갑게 대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을 위해 회당까지 지어준 것을 보면 그는 이미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있었을뿐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백인대장은 말 한마디 한 마디도 아주 예의바르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갸륵한 마음이 든 예수님께서 그의 종을 치유해주시려고 백인대장의 집을 찾아가던 중에 그는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복음 7장 6~7절)
백인대장이 지니고 있었던 예수님을 향한 강한 믿음과 자신이 데리고 있던 노예를 향한 측은지심, 거기다 지극한 겸손의 덕까지...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기적을 불러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소위 ‘아랫사람’들을 향한 측은지심을 지니고 있습니까?
그들의 치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주님께 청하고 있습니까?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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