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9.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영적 요람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하기
FINDING GOD IN ALL THINGS
THE JESUIT GUIDE TO (ALMOST) EVERYTHING
A Spirituality for real life
제임스 마틴 James Martin, S.J 지음
성찬성 옮김
류해욱.김용수 감수
펴낸곳 가톨릭출판사 www.catholicbook.kr
2013년 8월 28일 교회 인가
2014년 8월 15일 초판 1쇄 펴냄
2014년 8월 16일 초판 2쇄 펴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제62회 크리스토퍼상 수상
대출 2025년 2월 28일(금) 우리작은도서관 (상호대차 : 조원도서관)
읽기 2025년 3월 25일(화) ~ 357p
2025년 4월 28일(월) ~ 388p
2025년 4월 29일(화) ~ 540p
2025년 5월 27일(화) ~ 815p. 끝
- 11p. 이 책을 즐겁게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할 때 저를 기억해 주시고,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19p.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어져 우리는 성인 덕분에 삶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 29p. 두려워할 것도 없고, 숨겨야 할 것도 없으며, 오히려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 열어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 어떻게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 32p. 넓은 의미로 강생의 영성은 우리가 하느님을 매일매일의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이 단지 하늘 저편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여기에 계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여러분이 하느님을 찾고 싶다면 주변을 둘러보면 됩니다.
- "기도란 실제實在를 꾸준한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다." :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과 연관 짓게 된다. 그래서 기도하는 데에 '사랑'이 빠지면 안 되는 것 같다.
- 36p. 16세기의 신비가이든 현대에서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우리든 결국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여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 39p. 젊은 이냐시오가 지니고 있던 야망이 선한 것이 되도록 하느님이 이용하셨다고 본 것입니다. 도노반 신부님은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바뀌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스스로 보잘것없고 죄가 된다고 여기는 부분까지도 하느님은 가치 있게, 또한 거룩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금언에서 있듯이 하느님은 '비뚤어진 줄 위에서도 똑바로 글을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나 또한 청년성서모임을 하면서 하느님에 대해 알려고 하고, 그렇게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 점점 변화가 시작됐다.
- 41p. 나아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마침내 실망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53p. 결국 우리가 약한 인간이며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지만,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받는 죄인이라는 특별한 은총 또한 체험하게 됩니다. : 순간 절망해도 다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게 이끌어 주시는 사랑을 느낄 수 있다.
- 62p. 그들 중에는 알려진 이들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합니다.
- 93p. "거짓된 종교는 두려워 마라. 하느님을 신뢰하라. 그러면 그분이 그대가 두려워하는 일은 아무것도 그대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그대를 돌봐 주실 것이다.'라고 가르치지. 그러나 참된 종교는 '두려워 마라. 그대가 걱정하는 일들이 그대에게 일어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들은 사실 크게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가르치다네."
- 162p. "오직 우리 주 하느님만이 미리 어떤 이유 없이도 영혼에 위로를 준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에 드나들며 감동을 일으켜 그 영혼을 온전히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끄는 것은 본래 창조주께 속한 일이기 때문이다."(영신수련 330)
- 166p. 성덕은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인들도 역시 흠과 한계를 지니고 있었고, 지극히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성덕은 늘 사람 안에 자리합니다.
- 172p. 우리가 신을 찾는 것보다 신이 우리를 더 찾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 "그리고 만일 나의 종이 내게 한 뼘만큼 더 다가온다면 나는 그에게 한 팔만큼 더 다가가고, 만일 그가 내게 한 팔만큼 더 다가온다면 나는 그에게 한 길만큼 더 다가가며, 만일 그가 내게로 걸어온다면 나는 그에게 달려가겠다."
- 174p. 물론 우리가 불완전하고 때로는 죄 많은 사람일지라도, 하느님은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 175p. 자연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바다에서, 하늘에서, 숲에서, 그리고 들판과 시냇물에서 하느님을 찾아보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하느님을 찾아보고, 예술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면 미술관, 음악회, 영화관에서 가서 하느님을 찾아보십시오. 하느님은 어디에서나 우리와 만나실 수 있습니다.
- 191p. 다른 사람의 착한 양심을 강요하지 말고 자신의 착한 양심을 위해 힘쓰도록 하십시오. 자기 자신에게 선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선할 수 있겠습니까?
- 203p.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과 함께 성찰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떠올리면 성찰이 꼭 완수해야 하는 의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어, 보다 경건하고 편안한 성찰을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처럼 말이지요.
- 250p. 성경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하느님에 관해 알게 되는 길입니다. : 성경을 읽고 하느님에 대해 배우는 가톨릭성서모임을 다시 하게 된 것이 기쁘다!
- 259p. 하느님께 솔직하다는 것은 단순히 기도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그저 감사나 찬양을 드리는 일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과 함께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여기서 언급한 것과 같아 단순히 기도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그저 감사나 찬양을 드렸던 것 같다. 앞으로는 모든 것을 언제나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과 나눈다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 다시 말해 솔직함이란 우리가 하느님과의 대화에서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까지도 함께 공유한다는 뜻이지요.
- 287p. "완전히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과 그들의 부모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는 하느님의 어른인 우리와 맺고자 하시는 관계에 보다 온전히 부합되는 표상이다."
- 293p.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 297p.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우정에서나 그렇듯이 이를 견뎌 내고, 그리하여 하느님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는 일입니다. 아울러 하느님이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 330p. 우리는 듣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예수회원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
- 331p. 이렇듯 렉시오 디비나에는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행동하는' 네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 354p. 어느 날 조카가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바다 위에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매디 수녀가 물었습니다. "너 뭐하고 있니?" 조카가 대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집으로 가져가려고 제 안에 담고 있어요."
- 365p. 예수님은 이처럼 청빈과 정결 그리고 순명의 삶을 사셨습니다. 수도회 회원들이 청빈.정결.순명의 서원을 하는 주된 이유는 바로 이처럼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입니다.
- 388p. 성인이 청빈을 소중히 여긴 또 다른 이유는 사다리를 오르는 일이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도록 유도하는 교묘한 방식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 하느님 안에서 깨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도록 유도하는 것들을 잘 알아차려야겠다.
- 389p. 이냐시오 성인은 회심 초기부터 무엇이 자신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고(성인은 하느님을 섬기는 생각을 할 때 위안을 느꼈지요.) 무엇이 자신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지(명성을 얻으려는 계획을 생각할 때면 메마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성인은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세력을 구분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냐시오 영성에서는 이를 '영들의 식별'이라 부릅니다.
- 390p. 줄곧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리 떼어 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존재로 말이지요. : 악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리 떼어 놓으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 393p.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자문 위원으로 봉직했던 미국 예수회 신학자 존 코트니 머리는 예수회가 언젠가 교회에 세상을, 세상에 교회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404p.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 405p. 단순한 삶은 가난한 이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습니다.
- 430p. 제가 어리석게 행동하기 전에 저의 어리석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제가 겸손할 때 더없이 인간답고, 더없이 진실하고, 더없이 소중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 예수회원 다니엘 로드
- 445p.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확고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 사랑에 빠지십시오. 사랑을 지켜 나가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모든 일을 결정해 줄 것입니다.
- 456p. 제가 다른 사람의 사랑을 소유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로지 아낌없이 주고 흔쾌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사랑이었습니다.
- 469p.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용서하는 이와 용서받는 이 모두를 치유하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
- 499p. 친구나 가족이 자신에게 잘해 주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자신이 좋은 친구나 가족의 역활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있나요?
- 515p. 우정이란 상대방과 함께 공유라는 것이지요.
- 536p. "돕는 일에는 대단한 훈련과 학위가 필요하지 않다."
- 572p. 우리는 실생활에서 그분의 뜻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줄 알아야 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 앞을 스쳐 가는 모든 것을 하느님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했다.
- 이 깨달음이 기나긴 고역과 고통과 아픔의 세월에서 그를 지탱해 주었던 것입니다.
- 573p. 이 뜻을 단순히 이론이나 하느님 은총으로 가끔씩 부여되는 섬광 같은 통찰력이 아니라 그날그날 일상에서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 하느님 안에서 깨어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시선을 하느님께 돌리면 일상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 586p.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 가난한 마음, 좌절감 속에서 하느님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 601p. '죽을 때까지 순종한' 사람의 탁월한 본보기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 602p. 결국 우리는 이냐시오 성인이 말하는 연민이 본질적으로는 우리가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임을 배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말도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함께하는 것은 가능하다. :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이 마음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런 예수님을 생각하면 함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624p. 불편심은 하느님의 은총에서 비롯되는 결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655p. "죽어 가고 있는 자신을 머릿속에 그려보라"(영신수련, 186)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소름끼치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올바른 결정을 하도록 돕습니다. 먼 훗날 임종의 자리에 누운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때 '내가 무엇을 했어야 했나?'하고 스스로 묻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것은 대단히 큰 효과가 있습니다.
- 750p. 어쩌면 너무 익숙한 것으로 생각해서 그들의 노고가 다른 이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하느님은 항상 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분의 시선이지요. :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항상 본질을 잊지 말자!
- 764p.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이 바로 이렇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십니다.
- 774p. "하느님은 우리에게서 기쁨을 얻으신다." 또한 신학자 제이스 엘리슨은 "하느님은 우리를 좋아하십니다."라고 말했지요.
- 그 진가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며, 바로 이것이 자신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표지입니다.
작년에 읽고 신앙독서모임으로 다시 한 번 읽게 됐다.
독서모임을 이끌어 주시는 시몬 신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두 번째 읽는 것이어서 그런지 부담없이 읽혀졌다.
주석이 뒤에 있어 읽기에 불편했다. 주석은 바로 하단에 있으면 좋겠다.
이냐시오 성인과 예수회에 대해 자세히 알고, 그 영성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성인들 덕분에 삶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성인들은 귀한 자산이다.
하느님과 만나는 구체적인 방법들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하느님 앞에 모든 것을 열어 두고, 솔직하게 만나야 하는 이유도 알게 됐다.
기도에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을 알게 됐기에, 앞으로는 기도할 때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 또한 청년성서모임을 하면서 하느님에 대해 알려고 하고, 그렇게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 점점 변화가 시작됐기에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바뀌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마침내 실망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약한 인간이며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지만,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받는 죄인이라는 특별한 은총 또한 체험하게 되면서 순간 절망해도 다시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거짓된 종교와 참된 종교도 구별하는 지혜도 얻을 수 있었다.
또, 하느님은 어디에서나 우리와 만나실 수 있음을 더 느끼게 됐고, 하느님과 함께 성찰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성경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온 하느님에 관해 알게 되는 길이기에, 성경을 읽고 하느님에 대해 배우는 가톨릭성서모임을 다시 하게 된 것이 잘한 선택임을 느껴 뿌듯했다.
그동안은 단순히 기도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그저 감사나 찬양을 드렸던 것 같다. 앞으로는 하느님의 현존을 생각하며 언제나 함께해 주시는 하느님과 모든 것을 나눈다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마지막으로, 듣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닌, 실천의 중요성도 느끼게 됐다.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행동으로까지 연결되야 진정한 하느님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293p.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청빈과 정결 그리고 순명의 삶을 사셨다. 내가 수도회 회원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고자 했기에 그래도 그 마음을 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빈이 삶에서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지 않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됐다. 하느님 안에서 늘 깨어 있고자 하는 마음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악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리 떼어 놓으려고 노력하는 존재임음 상기하고 경계하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도록 유도하는 것들을 잘 알아차려야겠다.
이냐시오 성인은 회심 초기부터 무엇이 자신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고, 무엇이 자신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지 감지할 수 있었다. 나 또한 무엇이 나 자신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지 감지할 필요를 느꼈다. 이 필요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교회와 세상은 무관하지 않다. 교회에 세상을, 세상에 교회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시며 이 말을 증명하셨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사랑은 언행일치였다.
이처럼 사랑을 삶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단순한 삶은 가난한 이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게하며, 겸손함은 더없이 인간답고, 진실하고, 소중하게 만든다. 이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며 살아야겠다.
용서도 사랑의 실천임을 알게 됐다. 용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해야 한다.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찾는다는 것은, 지극히 확고하고 결정적인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 모든 행위에 앞서 사랑이 존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사랑에 빠지십시오. 사랑을 지켜 나가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모든 일을 결정해 줄 것입니다.(445p)'
하느님의 자녀로 살고자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있다.
그 길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길을 안내해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늘 자녀인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함께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감지하고자 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에게 그 뜻을 보여 주신다.
고역과 고통과 아픔의 세월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늘 함께해 주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에 그 끈을 놓지 않았다. 그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느님께서는 도와 주시고 위로와 용기와 힘을 주셨다.
연약함, 가난한 마음, 좌절감 속에서 하느님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죽을 때까지 순종한' 사람의 탁월한 본보기가 곧, 그리스도이기에 순종의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 그 안에는 깊은 사랑이 내재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의 마음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런 예수님을 생각하면 '함께'라는 의미의 폭을 이웃으로 넓힐 수 있다.
불편심도 하느님의 은총에서 비롯되는 결실이기에 용기를 갖게 된다.
"죽어 가고 있는 자신을 머릿속에 그려보라"(영신수련, 186)라는 말은 올바른 결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때 '내가 무엇을 했어야 했나?'하고 스스로 묻는다면 것은, 바로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에서 인생의 답을 찾을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답을 구하며, 항상 본질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에게서 기쁨을 얻으시고, 우리를 좋아하시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을 생각하며, 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이웃을 바라봐야겠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1) 신앙에서 나의 욕망은 무엇을 향하는가?
다 이뤄 주시는 하느님을 느낍니다. 하지만, 베풀어 주시는 사랑에 비해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이 책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하는 진정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에 감사하고 감탄하며, 하느님과 함께함이 몸에 배인 삶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2) 신앙 생활 안에서 변화된 체험은?
제 삶은 하느님에 대해 알려고 하고, 알기 시작한 삶의 전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계기는 청년성서모임이었습니다. 그 전에 성당은 다녔지만, 하느님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청년성서모임을 하면서 좋은 봉사자를 만나며 하느님의 사랑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해 알려고 하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말씀의 실천에 대해서는 아직도 어렵지만, 실천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기에 그것이 큰 변화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3) 기도 생활 중 가장 편하게 하는 방법은?
묵상 기도와 자유 기도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읽고, 감동하고 감탄하며 그에 대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느끼는 기도가 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기도입니다.
제 마음을 솔직하고 진실되게 하느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자유 기도도 좋아합니다.
4) 내가 생각하는 청빈과 그 실천 방법은?
단순하며 시간적으로는 여유를 잃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아이가 고3이 되면서 제 삶을 돌아보고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분주했던 삶을 정리하니 주위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챙기게 됩니다. 분주함은 하느님 안에서 깨어있지 못하게 합니다. 시간적 여유를 찾고 중요한 일에 더 힘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삶에서 중요한 일에 정성을 쏟게 되고, 진심을 담게 됩니다.
5) 이냐시오 영성에서 말하는 예수회 우정을 통해 성당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들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나요?
반모임 자매님들과 매 월 하느님 안에서 복음을 나누고, 사랑방 봉사와 성지순례를 통해 우정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가톨릭성서모임으로 하느님에 대해 더 알려고 하고, 배우려고 합니다. 그 마음으로 봉사자와 그룹원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함께 광야를 하느님 바라보며 잘 나아갈 수 있도록 청하게 됩니다.
6) 내가 발견한 성소와 성소에 응답하는 방법은?
: 성당에서 여러 봉사를 해 봤습니다. 현재는 가톨릭성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나누는 것이 매번 새롭고 기쁩니다.
그 기쁨으로 우쿨렐레와 오르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기쁘게 신앙 생활 할 수 있게 길 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7) 순명하기 어려운 순간과 기꺼이 순명할 수 있는 순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혹은 순명하기 힘들었던 이유와 순명할 수 있던 이유에 대해서
: 순종한 사람의 탁월한 본보기인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순종의 깊은 뜻을 몰랐습니다. 그 안에서는 깊은 사랑이 내재되어 있는데, 그 사랑도 부족했습니다. '불편심'도 하느님의 은총에서 비롯되는 결실인데, 그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시선이 부족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순명하며 봉사를 했어야 합니다. 제 소임을 넘어서 권위에 도전을 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에 더 시선을 돌리고 정성과 사랑을 더 쏟았으면 좋았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지 못했기에 아픔으로 남았지만, 그 아픔이 지금은 성숙한 신앙인의 길로 이끄는 다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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