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5일 목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마태 18,22)
하느님께서도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무한히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그 사랑과 자비로 저도 이웃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에페 5,2)
예수님을 생각하며 저와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계산을 무너뜨리십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18,22). 이 말씀은 형제에게 받은 상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가 되풀이되는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고단하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의 말씀입니다. 용서는 상처의 크기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지치면서도, 다시! 분노가 식지 않았는데도, 다시! 그 ‘다시’가 용서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공동체가 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상처 속에서도 서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그 배움의 자리 한가운데 주님께서 계십니다. 그런데 배우기 참 힘들지요. 배우기 싫기도 합니다. 그런 상처받은 마음 또한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분명히!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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