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4일 금요일
하느님을 찾아가는 신앙 여정 DAY 04
1) 변화를 가로막는 이유는 게으름과 나태함입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뒤로 하고 편하게 세상을 만나고 맙니다.
세상을 만나다 보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걸 뒤로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그동안 변화하고자 한 마음이 퇴보합니다.
진보하긴 어려워도 퇴보하는 건 순식간입니다.
그렇게되면 유혹에 쉽게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교만, 인색, 음욕, 탐욕, 분노, 질투가 올라오는 것도 막을 수 없게 됩니다.
다행인건 전과 달리 유혹에 걸려 넘어져도 예수님의 사랑을 금방 다시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 점입니다.
전에는 유혹에 걸려 넘어지면 다른 죄까지 쉽게 연결됐는데, 요즘은 후회하며 다시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며 예수님 앞에 앉습니다. 그래서 다른 죄까지 연결되는 걸 방지할 수 있습니다.
2)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느끼며 삶에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변화가 폭이 큰 체험과 적은 체험의 차이는 저의 자만이 가져다 준 느낌의 차이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불가능 한 것에 대해 기도로 청했을 때 좋은 결과에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였습니다.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큰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지 못하고, 불가능 했던 것에 대해 청했을 때 좋은 결과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모든 게 불가능하다 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크게 느끼고 있고 그래서 삶의 변화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변화가 폭이 큰 체험과 적은 체험의 차이는 저의 자만이 가져다 준 느낌의 차이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불가능 한 것에 대해 기도로 청했을 때 좋은 결과에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였습니다.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큰 사랑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지 못하고, 불가능 했던 것에 대해 청했을 때 좋은 결과에 대해서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제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시지 않으면 모든 게 불가능하다 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크게 느끼고 있고 그래서 삶의 변화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부님 말씀대로 제가 전에 쓴 글들을 찾아보며 적어야 했습니다. 섬세함 가르침 감사합니다^^)
: 오늘 질문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체험은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삶의 실절적인 변화(느낌이나 감정이 아닌 실제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내 안에 어떤 벽이 있거나 감정이나 이성으로 깨달은 하느님이 삶으로 정착하지 못하게 하는 외부 혹은 내적 요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가 느낀 체험이 삶으로 녹아내리지 못한 원인을 찾고 조금씩 수정해 나갈 수 있다면 더 깊은 영성 생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체험은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삶의 실절적인 변화(느낌이나 감정이 아닌 실제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내 안에 어떤 벽이 있거나 감정이나 이성으로 깨달은 하느님이 삶으로 정착하지 못하게 하는 외부 혹은 내적 요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가 느낀 체험이 삶으로 녹아내리지 못한 원인을 찾고 조금씩 수정해 나갈 수 있다면 더 깊은 영성 생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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