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6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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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0일 수요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아마 제주도에 갈 일이 있으신 분들은 대부분 자동차를 빌리실 것입니다. 섬인 제주도에 자동차를 가지고 갈 수가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우리나라 최대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에는 렌터카가 아주 많기 때문에 쉽게 빌릴 수 있고 또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주도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탈 일이 아니라면 자동차를 빌려서 운전을 합니다. 그래서 올 초, 제주도에 갔을 때에도 자동차를 빌려서 운전했습니다. 그런데 운전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나더군요. 분명히 제가 적당한 가격을 지불해서 자동차를 빌렸지만 이 자동차가 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서 안전 운전을 해야 합니다. 또한 깨끗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빌린 자동차는 분명히 제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반납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빌린 자동차를 마치 자기 것인 양 함부로 다룬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중에 반납할 때에 이에 따른 배상을 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몸 역시 언젠가는 주님께 반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살 것처럼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 것인 양 아무렇게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으로부터 잠시 빌린 우리의 몸을 언젠가는 주님께 잘 반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주인이신 주님께서 보시기에 엉망진창으로 사용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함부로 다룬 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우리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주인처럼 살 수 있는 자유를 주셨지만, 진짜 주인은 아니지요. 언젠가는 주님 앞으로 가서 이 세상에서 살도록 맡겨놓은 이 몸을 주님께 반납해야 합니다. 반납 조건은 주인이신 주님의 뜻에 맞게 잘 사용했느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삶, 주님의 뜻에 맞게 철저하게 살았는지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조건에 맞게 자신의 몸을 사용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인 것입니다. 이분들은 주님을 이 세상에 증거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생명까지 봉헌하신 분들이지요.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의 무서운 칼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생명을 내어 던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순교자들은 주님께 자신의 몸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되돌려 드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현재 과거의 박해시대처럼 피의 순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사랑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삶을 통해 순교를 할 수 있다고 하지요. 바로 백색 순교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백색 순교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주님 앞에 자신의 몸을 반납할 때에 잘 사용했다면서 칭찬 받지 않을까요?

 

 

오늘의 명언: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티베트 속담).

  

 

보이지 않는 열매

  

농사를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한 청년이 밭에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 고구마를 너무나도 좋아했기 때문이지요. 좋아하는 고구마를 직접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더 열심히 고구마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이 고구마는 줄기만 옆으로 계속 뻗어가기 때문이지요.

고구마니까 당연히 줄기가 옆으로 계속 뻗어나가야 하겠지요. 그러나 농사가 처음인 청년은 고구마가 나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싹이 나고 잎이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나무가 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자라는 고구마를 보면서 결국 잘못 심었다면서 그 밭을 떠나 버렸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생각과 달리 땅속에서는 고구마가 가득 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청년처럼 보이지 않는다면서 쉽게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뜻은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늘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가 미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님께서는 주시는 커다란 선물이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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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8일 월요일

좋은 사람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루카 7,1-10

  

좋은 사람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가끔씩 뜻밖의 선물처럼 참으로 매력적이고 호감가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로또에 당첨되거나 보너스를 탈때 보다 더 기분이 좋습니다.

그저 외모가 잘 생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인간미에 자상하고 너그러운 성품, 균형잡힌 감각에다 이웃을 배려하는 자상한 마음, 거기다 예의바르고 겸손한 말투까지.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훈훈해집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금은보화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 무엇이든 한없이 베풀고 싶습니다.

해질녘 긴 강가를 따라 아무리 걸어도 피곤을 느끼게 하지 않는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극찬하시는 백인대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향한 예수님의 칭찬은 복음서 그 어디를 봐도 찾아보기가 힘든 대단한 칭찬이었습니다.

당신께서 후계자로 지목하신 베드로 사도에게도, 애제자였던 요한 사도에게도 하지 않으셨던 극찬이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루카복음 7장 9절)

그렇다면 극찬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에 앞서 백인대장이 지니고 있었던 한없이 따뜻한 인간미 때문이었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누군가의 치유를 간절히 청하고 있었는데, 그 대상이 누구였습니까?

백인대장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했던 아들이나 딸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노예의 치유를 청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 처럼 예수님 시대 당시 노예는 가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우리 시골 장날 우시장에서 소가 매매되듯이, 당시 노예들은 목줄이 묶인 채 길거리에 진열되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예를 사러 온 사람들은 마치 소를 사는 것 처럼 노예의 입을 ‘쫙’ 벌려 치아가 괜찮은지 확인해봤습니다.

때로 옷을 홀랑 벗겨 피부병은 없는지 육안으로 자세히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런 어처구니 없던 시대, 백인대장은 자신의 노예를 가족처럼 여기며, 인격적으로 대해주었습니다.

노예였지만 한 지붕 아래서 오랫동안 동고동락하다보니 정이 많이 쌓였겠지요.

그런 노예가 죽을 병에 걸리자 체면불구하고 예수님께 치유를 청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인대장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다인들에게도 큰 호의를 갖고 살갑게 대해준 사람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을 위해 회당까지 지어준 것을 보면 그는 이미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고 있었을뿐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백인대장은 말 한마디 한 마디도 아주 예의바르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갸륵한 마음이 든 예수님께서 그의 종을 치유해주시려고 백인대장의 집을 찾아가던 중에 그는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루카복음 7장 6~7절)

백인대장이 지니고 있었던 예수님을 향한 강한 믿음과 자신이 데리고 있던 노예를 향한 측은지심, 거기다 지극한 겸손의 덕까지...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기적을 불러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소위 ‘아랫사람’들을 향한 측은지심을 지니고 있습니까?

그들의 치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주님께 청하고 있습니까?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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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3일 수요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9월 13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렸을 때에 친구들과 야구를 많이 했습니다. 아니 야구가 아니라 ‘찜뽕’이라는 것을 했었지요. 왜 ‘찜뽕’이라고 말했을까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옵니다.

‘작은 고무공을 주먹으로 치고 나가는 야구와 비슷한 놀이의 전라도 방언.’

당시에는 작은 고무공 하나도 귀했었지요. 그래서 라면봉지들을 한 봉지에 담은 뒤에 동그랗게 말아서 실로 단단하게 묶었습니다. 이것이 공이었고, 이러한 공으로 축구도 하고 찜뽕도 했습니다. 진짜 공이 없으니 다른 장비가 있을 리가 만무했지요. 그러다 어쩌다 누군가가 공을 가져오면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항상 운동장에는 공을 가지고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았고, 운동장에 자리가 없어서 동네의 빈 공터 역시 뛰어노는 아이들로 북적였습니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참으로 행복한 기억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았어도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어떠한 것을 한다고 하면 다 장비를 갖추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야구를 한다고 하면, 글러브는 기본이고 포수 보호 장비까지 다 갖추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없어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방과 후 초등학교 운동장을 보면 늘 텅 비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네의 놀이터를 비롯한 공간에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이곳 역시 아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숫자가 줄기도 했지만 노는 아이들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을 갖게 합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어른이 되었을 때 슬그머니 웃을 수 있는 행복의 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시면서 행복과 불행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가난한 사람, 지금 우는 사람,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하는 사람, 박해를 당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유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은 반대로 불행하다고 하시지요.

행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주님의 말씀은 왜 정반대일까요?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오히려 불행하다고 하시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은 반대로 행복하다고 하시는 주님을 이해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부족함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행복했던 것을 기억해보니,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이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 중요한 가치에 모든 것을 걸면서 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사랑의 삶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세상의 기준을 넘어서 주님의 기준을 따르는 사람,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할 일, 사랑할 대상, 소망할 일(알렉산더 차머스).

 

 

마음을 바꾸는 것

  

비행기(보잉 747)의 무게는 자그마치 350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난다는 것이 정말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비행기가 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속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긴 활주로를 시속 100Km, 200Km, 300Km로 계속해서 속도를 올려서 빠른 속도로 달리다보면 비행기의 무게가 속도에게 잡혀 먹혀서 하늘을 날 수 있는 가벼운 상태가 된다고 하더군요.

잘 이해가 되지 않지요? 돌멩이를 손에 들고서 힘껏 던지면 속도가 있는 동안에는 돌멩이의 무게가 작용하지 않아서 공중에 떠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속도가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무게가 다시 증가해서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동차도 그렇습니다. 자동차가 시속 100Km 정도로 달릴 때의 무게는 글쎄 500g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추돌 사고를 내면 마치 종이를 구기듯이 심하게 구겨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 속도를 내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고통과 시련이라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점점 좌절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떨어지지 않도록 속도를 내는 것, 이것이 바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요?

마음을 바꾸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좌절이 아닌 희망의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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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2일 화요일

겸손한 신원의식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루카 6,12-19

 

겸손한 신원의식

 

공생활을 막 시작하신 예수님에게 있어 다른 무엇에 앞서 시급한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당신이 시작하시려는 인류 구원 사업의 협조자들을 선출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던지 산으로 들어가신 다음 꼬박 밤을 새우시며 철야기도를 하신 다음 비로소 인선의 가닥을 잡으셨습니다.

사도(使徒)란 말마디 그대로 ‘누군가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에게 임무를 부여하신 분, 그리고 세상으로 파견하신 분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 사도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은 자신의 힘과 권위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따라, 그분의 힘과 권위에 의지해서 일하는 것이지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도들은 군주가 아니라 사절이며 손이 아니라 연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있어 주도권을 쥐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시며 나는 그저 그분의 작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겸손한 신원의식이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바라봅니다.

참 많은 반성과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성전의 영원한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 반면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목자는 잠시 교회를 관리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라고 이 땅에 ‘보냄 받은’ 사람이지

결코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사목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겸손의 덕입니다.

‘저는 원래 참으로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제게 크신 자비를 베푸셔서 이렇게 나약한 저를 당신 사도로 뽑아주셨습니다.

저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파견된’ 자로서 오직 주님의 뜻대로, 그분의 계획에 따라 움직여야 할 사람입니다.

제 모든 사고방식, 행동 지침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며 권위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라는 자의식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이 세상 도래로 인해 오랜 구약 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 신약 시대를 활짝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열두 지파를 무대에서 모두 내리시고 12사도들을 신약시대의 새로운 조상들로 내세우셨습니다.

12사도로 새롭게 구성된 하느님의 백성은 이제 더 이상 종족이나 혈육, 민족이나 국가를 중심으로 한 일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일치를 이룹니다.

 

야곱의 12명 아들 대신 이제 예수님의 12사도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바위, 교회의 초석이 된 시몬 베드로, 그리스도의 향기였던 안드레아, 첫 번째 피의 증거자 야고보, 위대한 신비가이자 영혼의 증거자 요한, 충실했던 필립보와 거짓이 없었던 바르톨로메오, 과거를 말끔히 청산한 마태오와 점차 신앙을 키워간 토마, 성실했던 야고보와 열정이 대단했던 열혈당원 시몬, 말씀의 증거자 유다와 그리고 마침내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 열두 사도의 전반적인 인선을 분석해볼 때 가방끈이 길거나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고, 동시에 극빈층 출신도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당시 사회에서 중류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직업분야를 고찰해보면 철저하게도 서로 다른 분야, 다른 성향의 인물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사도 공동체의 단합은 견고했습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계약이 사도 공동체 안에서 실현되고 있었고, 공동체의 중심에 언제나 파견시키는 분이자 든든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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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0일 일요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 18, 15)

 09.10.연중 제23주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 18, 15)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갈등 속에서도

형제를 얻는 기쁨을

맛보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른다 해서

공동체의 이방인이

공동체안으로

들어오진 않습니다.

 

또 없는 형제애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형제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형제애는

형제의 말을

들어주는 거기에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형제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살아있는 공동체는

도움이 필요한

형제의 손을

놓치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함께 흐를 수 없습니다.

 

버려지는

형제가 아니라

다시 얻는 형제룰

원하십니다.

 

공동체의 가장

아름다운 방식은

기도하는 삶입니다.

 

형제가 형제를

미워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시간을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형제를 통해

제 모습을

보게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끝까지 형제애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형제와 멀어지는 것은

공동체와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형제애의 결속이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필요한

우리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요.

 

-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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